[스크랩] 익어가는 가을 밤, 향긋한 우리술과 함께~
익어가는 가을 밤, 향긋한 우리술과 함께~
‘은은하고 깊은 향과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를 가진, 숙취 없이 뒤끝이 깨끗한 술’, 바로 우리 전통주에 관한 설명입니다. 전통주는 우리 땅에서 자라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곡물을 주재료로하여, 인공적인 첨가 과정 없이 물과 누룩으로 발효시켜 빚은 술을 말합니다.
전통주는 탁주와 청주, 소주의 세 가지로 크게 분류됩니다. 탁주는 우리나라 술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술로, 막걸리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마구 걸렀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는데, 곡물 원료에 누룩과 물을 첨가하여 발효시킨 후 그대로 걸러서 마시는 술로, 탁하고 희뿌연 빛깔을 갖게 됩니다. 반면에 이를 잘 가라 앉혀 맑은 술만을 모아 걸러낸 것이 바로 전통주의 중심이 되는 청주입니다. 마지막으로 소주는 탁주와 청주를 소줏고리와 같은 증류기를 통해 받아내어 얻는 알코올 함량이 높고 맑은 술입니다.
우리 민족은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술을 빚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술에 대 한 기록은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인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술을 대접하여 유인했는데, 그 중 둘은 도망가고 첫째인 유화가 붙들려 해모수와 살게 되어 낳은 아들이 주몽이라는 이야기가 ‘제왕운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우리 술은 그 종류와 제조 기술이 계속 발전되었는데요, 삼국시대에는 백제 사람 인번이 일본으로 건너가 술 빚는 기술을 전해주어 술의 신으로 추앙받았다는 이야기가 일본의 고문헌에 나와있기도 합니다. 곡물을 주 원료로 한 곡주에서 시작된 우리 술은 고려시대에 몽골로부터 소주가 전해졌으며, 조선시대는 술의 종류가 무려 300 종에 이를 만큼 이른바 전통주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식량 부족으로 인한 밀주 단속으로 인해 많은 전통주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맥주와 양주, 와인 등 많은 술들이 소비되는 이때에도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며 사랑받는 우리 고유의 전통주들이 있는데요, 오늘은 우리나라 각 고장마다 전해오는 유명한 전통주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강원도 : 왕에게 바친 황금빛 옥수수술, 옥선주
강원도의 유명한 술로는 ‘효자가 빚은 술’ 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홍천의 옥선주가 있습니다. 조선 말기 효자 이용필은 괴질에 걸린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허벅지살을 잘라 국을 끓여 병을 낫게 한 효행으로, 고종으로부터 효자 포상과 벼슬을 받았습니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용필이 고종에게 자기 집안의 술인 옥선주를 바친 것이 옥선주가 효자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입니다. 옥선주는 강원도 홍천군의 5대 명품인 찰옥수수를 주재료로 하여, 빚어진 술로 옥수수의 구수한 향기와 그 특유의 알싸하고 화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뒷맛이 깨끗하고 숙취가 없고, 약리작용이 좋아 몸에 좋은 술이라는 것도 옥선주의 특징입니다. 옥선주는 40℃의 다소 높은 도수를 가진 술이기 때문에, 음식에 반주로 곁들여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만약 높은 도수가 부담스럽다면 새콤달콤한 감식초와 섞어서 부드럽게 마셔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충청도 : 진달래꽃 향기 가득한 부드러운 술, 면천 두견주
충남 당진의 면천 두견주는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주입니다. 이 두견주에는 전해 내려오는 오래 된 전설이 있는데, 고려 개국공신인 복지겸이 병이 들어 어떤 약을 써도 낫질 않아 그의 딸이 백일동안 아미산에 올라 기도를 드렸더니, 꿈속에서 신선이 나타나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술을 빚는 법을 알려주어 그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아미산의 진달래꽃과 안샘의 물을 사용하여 빚는 비법으로, 이것이 바로 면천 두견주를 빚는 방법입니다. 실제로 면천 두견주는 빚을 때 두 번에 걸쳐 찹쌀을 이용하고 4월 야산에 핀 진달래꽃을 말려 켜켜이 넣는데, 신경통과 류머티즘에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실제로 마셔 본 두견주는 진달래 향기와 부드럽고 달달한 맛에 깔끔한 목넘김이 일품이었습니다. 너무 빨리 삼켜버리지 마시고 입에 잠시 머금고 있으면 진달래꽃의 은은한 향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혹시 진달래 꽃으로 만든 술이라고 해서 분홍색이 아닐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면천 두견주는 진달래와 찹쌀이 만나면서 생기는 특유의 담황갈색을 띄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약 붉은 빛을 띈 두견주가 있다면 이는 인공적인 색소를 넣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라북도 : 몸에 좋은 재료에 황홀한 향기로 정평이 난, 전주 이강주
우리나라 5대 명주의 하나인 이강주는 이 지방 고유의 다양한 원료를 사용하여 정성스레 빚어진 술입니다. 이강주는 전통 소주에 청량감을 주는 배, 몸을 데워주며 살균효과를 가진 생강, 신경은 안정시켜주고 해독효과로 숙취를 줄여주는 울금, 계피, 그리고 이 독특한 재료들의 맛을 담담하면서도 조화롭게 해주는 꿀을 넣어 30일간 숙성시켜 만듭니다. 예로부터 사대부와 상류계층이 즐기던 ‘품격있는 술’인 이강주는 일반 소주와 같은 알코올 도수 25%로 위에 부담이 적으며, 계피향과 함께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로 마시는 흥취가 있는 술입니다.
전라남도 : 강렬한 붉은 빛의 묵직한 보리소주, 진도 홍주
고려 말부터 진도지방에서 빚어져 온 진도 홍주는 보리밥을 사용하여 빚은 소주에 약재인 지초를 써서 걸러내어 짙은 붉은 빛깔을 가지는 알코올 도수 40도 안팎의 술입니다. 보리의 구수한 맛과 지초가 주는 달콤한 향과 감칠맛, 그리고 특유의 붉은 빛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오래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에, 술맛이 깨끗하고 숙취가 적다는 것도 진도 홍주의 장점입니다.
경상북도 : 한여름의 무더위를 거뜬히 넘기게 해주는 약주, 김천 과하주
국화잎과 솔잎 위에서 식힌 찹쌀 고두밥에 누룩을 넣어 그대로 저온에서 발효시켜 빚는 김천 과하주는 찹쌀의 감칠맛과 특유의 국화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술입니다. 과하주는 발효시키는 기간이 가장 중요한데, 단 맛이 적당히 남아 있을 때 발효를 멈추게 되면 부드러운 목넘김을 가진 과하주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옛 문헌속의 과하주는 ‘갈증을 씻어 주어 한여름도 거뜬히 날 수 있는 술’, ‘혈액순환에 좋고 오래 마시면 신경통에 도움이 되는 술’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과하주는 알코올 도수 16도의 약주와 23도의 혼양주의 두 가지가 생산되는데, 국화향을 머금은 부드러운 약주는 반주로, 약간 도수가 높은 혼양주는 고기 안주와 함께 먹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경상남도 : 45도의 강렬한 진짜 소주, 안동소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인 소주, 우리 전통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주는 아마 안동소주일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는 고농도의 알코올을 물로 희석하여 감미료를 첨가한 희석식 소주이지만,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안동소주는 다른 첨가물 없이 그대로 증류한 진짜배기 소주입니다. 안동소주가 유명한 것은 이 지역의 마 잎으로 풀향을 낸 누룩과 좋은 물을 사용하여 빚어냈기 때문입니다. 구수한 향취를 가진 알코올 도수 무려 45도의 안동소주는 입안에 털어 넣으면 목젖까지 얼얼할 정도의 화끈한 술로, 기름진 육류에 잘 어울리는 우리 술입니다.
제주도 : 좁쌀로 담은 제주도의 토속주, 오메기술
토질 때문에 쌀이 넉넉하지 못했던 제주도에서는 쌀 대신 차조를 사용해 ‘탁배기’라고도 불리는 오메기술을 만들었습니다. 차조가루에 물맛 좋기로 유명한 제주도의 암반수를 넣어 빚은 오메기떡을 발효시킨 후, 위에 고인 청주를 떠내고 나면, 표면에 기름기가 살짝 돌면서 특이하게 살짝 붉은 기를 띄는 오메기술이 완성됩니다. 새콤달콤한 특유의 감칠맛과 술이 맞나 싶을만큼 부드러운 맛을 지닌 오메기술은 별다른 안주 없이도 즐길 수 있는 맛있고 속이 든든한 전통주입니다.
반만년 우리네 삶과 그 땅에서 함께 살아온 우리 곡물로 빚어진 우리술. 이 우리술로 다가오는 명절과 깊어지는 가을밤을 보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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