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하늘이 높고 푸르른 날에는 산행이 좋은데요,
정상에서 외치는 "야홋~!" 과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에 한 잔 들이키는 막걸리와 파전이란...
우리나라 전통 술 '막걸리".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다하고, 유산균이 요구르트보다 훨씬 많이 함유되어 변비에도 좋다는 말도 있지요?
잊혀져가는 듯... 화려하게 부활한 '막걸리'에 대해 식약아리아 최유리 기자가 정리해드립니다.
막걸리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검게 그을린 농부아저씨가 논일을 마친 뒤 벌컥벌컥 들이키던 모습이 생각나시나요? 아니면 70년대 허름한 뒷골목 대폿집에서 시대의 근심과 함께 털어마시던 모습이 생각나시나요?
하지만 더 이상 막걸리는 고향 한 구석의, 아련한 과거의 한 페이지가 아닙니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우리의 전통술 막걸리가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소주나 맥주 등 다른 술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가 화려하게 부활한 막걸리, 그가 다시 국민적인 술로 재기할 수 있었던 비결을 분석해 봅니다.
우선 워밍업으로 막걸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막걸리는 한국의 전통 술일 뿐 아니라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술 중 하나입니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 거른 술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요, 탁주(濁酒) 또는 농주(農酒)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지기도 합니다. 막걸리는 보통 쌀이나 밀로 만드는데요,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쪄서 식힌 다음 누룩과 물을 섞고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킨 것을 그대로 거른 것을 마시게 됩니다. 반면 거르지 않고 밥풀이 그대로 뜬 것이 동동주죠.
막걸리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막걸리가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부터입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한결같이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던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전체 술 소비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1965년 만성적인 식량부족 때문에 '양곡관리법'이 시행된 이후 그 인기가 점점 식어갔죠.
80년대 중반에 와서는 소비량이 절반으로 떨어지다가 후반에는 소주와 맥주에게 주도권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1990년대는 막걸리의 소비량이 5%까지 추락하게 됩니다.
끝없이 추락하는 듯했던 막걸리는 2000년대 한류열풍과 웰빙바람을 타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막걸리는 특히 일본에서 그 인기가 대단합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00년 750t이던 막걸리 수출은 2007년에는 3900t으로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이외에도 중국·미국 등 14개국에 수출하고 있구요. 해외시장과 더불어 국내시장에서도 막걸리를 웰빙식품이나 건강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판매량이 증가했습니다. 국세청의 '술 소비동향' 자료를 보면, 막걸리 판매량은 2002년 12만9000t을 기점으로 계속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2007년에는 17만2342t에 이르렀고 현재도 가파르게 상승중이죠.
▶ 막걸리 수출량 추이(출처-매일경제) ▶ 일본 메뉴판 속 막걸리(출처-sbs스페셜)
실로 화려한 부활입니다. 대한민국 대표 전통주라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그저 전통으로 퇴색하는 듯 했던 막걸리의 뒷심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낮은 도수
술을 즐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알코올의 힘을 빌려 즐겁게 스트레스를 풀고자 함 일 것입니다.
그러나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은 몸에 부담을 주기도 하죠. 막걸리는 이러한 술의 딜레마를 깨끗이 해결해주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6~7도로 적당해 몸에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적당히 마신다면요.)
막걸리의 낮은 도수는 막걸리가 일본에서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일본에도 막걸리와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도부로쿠'라는 전통주가 있으나 도수가 높아 부담스러워하는 일본인들에게 막걸리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술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죠.
부담 없는 맛과 가격
소주나 양주 같은 술은 특유의 쓴 맛과 목 넘김에서 느껴지는 알싸함 때문에 마시기 힘들어 하는 분들도 계시죠? 그래서 과일소주와 같이 다른 재료와 섞어 먹기도 하구요. 반면 막걸리는 주원료인 곡물이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포도당과 같은 단당류로 분해되며 이런 단당류들이 단맛을 냅니다. 달짝지근하고 목 넘김이 좋아 여성분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죠. 여기에 가격까지 착합니다. 1.2L 보통 막걸리를 1,100~1,300원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으니까요.
영양만점의 건강한 술
앞서 낮은 도수, 부담 없는 맛과 가격이라는 막걸리의 인기요인을 소개해 드렸지만 막걸리의 진가는 지금부터입니다. 영양학적으로 알려진 막걸리의 우수성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막걸리 한 병(700~800㎖)에 700억~800억 개의 유산균이 함유돼 있는데, 이는 일반 요구르트(65㎖)의 100~120병 정도와 맞먹는 양입니다. 유산균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장에서 염증이나 암을 일으키는 유해 세균을 파괴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기능이 있죠. 막걸리에는 여러 종류의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는데 특히 비타민B가 풍부합니다. 비타민B군은 특히 중년 남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영양소로 피로회복과 피부재생, 시력증진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여성에게도 물론 좋습니다. 막걸리는 식이섬유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죠. 막걸리 성분 중에서 물(80%) 다음으로 많은 것이 식이섬유(10% 안팎)인데, 막걸리 한 사발에는 같은 양의 식이음료와 비교할 때 100~1천배 이상 많은 식이섬유가 들어 있습니다. 식이섬유는 대장 운동을 활발하게 해 변비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포만감이 커서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하구요.
이밖에도 막걸리 속 효모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트려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고, 당질과 단백질이 술 마심으로 인해 나타나는 혈당감소현상을 막아줍니다. 또 그냥 두면 하얗게 가라앉는 고형분은 고혈압 유발효소를 억제하고 항암효소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적당한 도수의 알코올이라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피로물질과 노폐물 제거역할도 하는 등 막걸리의 우수성은 다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예요. 그러나 막걸리도 술인지라 과음하시면 건강에 해롭다는 것 다시 한 번 상기하시면서 다음 인기 비결을 살펴볼까요?
기술로 단점 극복
맛, 영양 등 장점이 많은 막걸리에게도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숙취와 트림입니다. 막걸리를 먹고 난 다음날 두통 등의 숙취로 고생하신 경험 있으실 꺼예요. 과거에는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석유와 비슷한 성분의 화학물질인 '카바이트'를 섞은 탓에 두통을 심하게 유발했다고 해요. 그러나 식약청이 카바이트의 첨가를 금지하고, 양조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막걸리의 두통유발은 줄어들었습니다.
두통유발의 또 다른 원인은 알코올이 분해된 메틸렌 때문인데요,
증류주의 경우 증류과정에서 메틸렌이 어느 정도 휘발됩니다.
그러나 증류과정을 거치지 않는 발효주의 경우에는 증류주보다 메틸렌 함량이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증류주보다는 발효주를 마셨을 때 두통이 잘 일어나는 것이죠. 막걸리는 메틸렌함량이 높은 발효주이기 때문에 두통을 잘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높은 온도에서 빠른 시간 안에 숙성시킬수록 메틸렌이 많이 생성된다고 해요. 그래서 요즘 대부분의 막걸리는 8~9일 동안 적정온도에서 숙성시키기고, 새롭게 출시된 막걸리 중에는 기존 제조기간 보다 3~4일 정도 더 천천히 숙성시켜 메틸렌 함량을 줄인 제품도 있습니다.
◀ 매생이 막걸리
발효 시 나오는 탄산가스로 인해 톡 쏘는 청량감이 있지만 트림을 유발하기도 하구요. 이러한 막걸리의 단점을 극복한 막걸 리가 속속 출시되고 있습니다. 효소와 효모의 비율을 맞추어 완전 발효를 시키거나, 매생이 등 새로운 재료를 첨가하여 탄산가스가 나오지 않고 숙취를 심하지 않게 해 막걸리를 더욱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막걸리의 고급화와 대중화
우선 막걸리 전문점의 확산이 막걸리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막걸리 전문점은 최고의 창업아이템으로 떠오르면서 지난해에는 수도권에만 막걸리 전문점이 무려 200여개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점들은 토속적 분위기 외의 다양한 컨셉으로 막걸리를 더욱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죠. 또 최근에는 용기도 다양화하여 기존 PT용기 외의 간편한 캔 막걸리도 출시되었습니다.
▲ 막걸리 전문점(좌), 캔막걸리(우)
한편 친근하고 서민적인 이미지의 대명사인 막걸리가 고급화 전략도 꾀하고 있습니다. 골프장, 특급호텔, 백화점 입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해외의 고급술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국내소비자 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 사이에 막걸리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골프장이나 고급호텔에서도 막걸리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죠. 백화점에서도 그동안 유통기한이 짧고 가격대가 낮다는 이유로 외면 받았던 막걸리가 당당히 진출하여 가파른 상승세의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대중적인 곳이든, 고급스러운 곳이든 막걸리의 바쁜 행보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다양한 변신
지금까지 막걸리 변신이 '막사'(막걸리+사이다)나 '맥탁'(맥주+탁주)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각종 지역 특산물을 첨가한 막걸리부터, 과일 막걸리, 막걸리 칵테일, 막걸리 셔벗, 막걸리 아이스크림 등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선 또 쌀·콩·보리 등을 섞은 오곡, 수삼을 넣은 막걸리는 남성들에게 호응이 높습니다. 이 밖에도 더덕, 대추, 메밀, 밤, 고구마, 검은깨에 이르기까지 변신은 무궁무진해 보입니다.
멜론, 수박, 딸기, 망고, 오렌지, 복숭아, 포도, 코코넛 등 대부분의 제철 과일과 막걸리를 섞으면 뽀얀 막걸리가 빨강, 노랑, 초록 등 천연색 칵테일로 탈바꿈합니다. 막걸리에 과일을 섞으면 막걸리 특유의 텁텁하고 시큼한 향이 사라져 마시기 편해집니다. 이처럼 고운 빛깔의 막걸리를 사발이 아닌 칵테일 잔이나 도자기 잔에 담아 멋스럽게 마실 수 있으니 젊은 층에도 어필할 수 있겠죠. ▲ 막걸리 셔벗
또 막걸리에 설탕이나 꿀을 섞어 얼린 뒤 갈아 시원하게 마시는 마걸리 셔벗, 막걸리 아이스크림등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언제, 어느 곳이나 술이 있어 왔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술을 빚었고, 술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싹텄습니다. 와인, 위스키, 코냑, 마오타이, 테킬라 등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각 국의 명주들은 단지 술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앞서 살펴본 막걸리 특유의 우수성과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막걸리도 세계적 명주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와인처럼 전 세계인이 막걸리의 맛과 멋을 즐기고 있을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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